이명(diffusound.com)의 호스팅기간이 만료되었다. 백업용으로 남긴다.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Post Rock 특집: 우리가 꼭 들어야 할 포스트락 50선
스래쉬메탈의 격류를 지나, 헤어메탈의 너울을 건넜고, 마침내 데스메탈의 용암을 뚫고 포스트락에 이르렀다. 조회수 따위에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패기가 심금을 울린다. 이만하면 임상이 필요한 단계다. 제정신이면 이런 특집을 못한다. 편집장이란 작자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인가? 내가 그의 친구라면 멱살을 잡고 물었을 것이다. “밥은 먹고 다니냐?” 제발 좀 샤방하게 놀자. 마지막 충고다.
아무튼 우리는 포스트락에 도착했다. 락의 아롱이와 다롱이 같은 이런저런 하위장르중, 포스트락만큼 가마솥 같은 장르는 없을 것이다(아, AOR이 있군). “post”라는 접두사가 붙은 단어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 “~를 넘어선다”는 의미인지, “그 내부에서 외연을 넓힌다”는 의미인지, 이도 저도 아닌 제 3의 의미인지는 고민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포스트락(post rock) 또한 다르지 않다. 정말 “락을 넘어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인지, 아님 “락의 테두리를 확대하려는 기획”인지에 대해선 정설이 없다. 하여, 포스트락이라는 명칭은 말 그대로 “쟁점”이다. 미지의 영역이다.
때문에, 이 특집은 태생적으로 “미완성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랬듯, “50장”이라는 수치가 적게 느껴진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음반, 큰 변화를 내포한 음반, 다양한 사운드스케이프를 펼쳐낸 음반들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애썼다. 심지어, 술 마시고 회의하다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중년의 다 큰 어른들이 “포스트락” 때문에 싸우는 장면은 슬펐다. 내 자신이 창피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순수하게 가여운 사람들이 또 있을까? 오해는 말자. “좋다”는 게 아니라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거다. 울 것 같으니 격려의 댓글은 정중히 사절한다.
그럼 다시금, 이 철없는 기획의 문을 연다. 부디, 즐겁게.
리뷰어 명단
이경준(이명 편집장)
빅쟈니확(이명 편집위원)
김학선(보다 편집장)
조일동(음악취향 Y 편집장)
정원석(대중음악평론가)
김종규(이명 편집위원)
김성대(음악취향 Y&파라노이드 필자)
서성덕(이명 편집위원)
이대희(이명 편집위원&프레시안 기자)
윤호준(음악취향 Y 필자)
임희윤(동아일보 음악기자)
정진영(이명 편집위원&헤럴드경제 기자)
이종민(이명 편집위원)
김봉환(벅스뮤직 컨텐츠팀)
#50. Lights & Motion [Chronicle] (2015)
Lights & Motion은 스웨덴인 Christoffer Franzén가 모든 곡을 쓰고 연주하는 원맨 밴드의 이름이다. 데뷔 이래 그가 일관되게 천착해온 작업은 “사운드의 이미지화, 음향의 시각화”이고, 그 점에서 밴드 음악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형용사는 “시네마틱(cinematic)”이다. 물론, “시네마틱 포스트락”이 Lights & Motion의 등장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다. 저 유명한 Explosions in the Sky의 성공 이후, 숱한 포스트락 밴드들이 그쪽 음악을 시도해왔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팀들은 턱없이 부족한 기량으로 선배의 업적에 흠결만을 남겼다. 하지만, Lights & Motion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와 구성으로도 빼어난 음반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해왔다.
특히, 세 번째 음반 [Chronicle]은 그 창작력의 정점에 위치한 작품이다. ‘Fireflies’, ‘Glow’, ‘Particle Storm’ 등 대부분의 트랙들은 통상적인 팝 트랙처럼 짧은 러닝타임 속에, 임팩트 있는 순간을 박음질해 넣는다. 키보드의 역동적인 활용, 뒤를 받치는 오케스트레이션, 타이트한 편곡. 그 총합이 주조해내는 음악은 포스트락의 하드한 팬이 아닌 사람에게도 소구할 수 있는 포인트로 자리한다. 그리고 가장 돋보이는 덕목인 절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치고 나가야겠다는 욕심이 보이지 않는다. 멈춰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안다. 단언할 수 있는 건, 그 ‘한 끗 차이’가 A급과 B급의 차이를 만든다는 거다. 혹, 서정적인 포스트락을 좋아하는가? 그럼 들어라. 포스트락이 난해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필히 들어라. (이경준)
#49. Aerial M [Aerial M] (1997)
Aerial M은 David Pajo의 또 다른 이름이다.(그에게는 ‘M’, ‘Papa M’이라는 가명이 둘 더 있다) David Pajo는 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모두 다룰 줄 아는 팔방미인으로 Slint와 Tortoise, Stereolab 같은 포스트락 밴드들을 비롯, 2003년엔 Billy Corgan의 밴드 Zwan에서도 풀타임 멤버로 활약했다. 이 앨범은 그가 가진 장기들 중 기타리스트로서 재능을 풀어놓은 것으로, 수록된 거의 모든 곡들이 그리 난해하지 않아 포스트락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매우 친절하게 다가설 작품이다. 비트라고 해봤자 ‘Rachmaninoff’에서 들을 수 있는 깡마른 스네어 드럼 소리나 ‘Skrag Theme’가 내뱉는 어지러운 루프가 전부일 정도로, 이 앨범엔 David Pajo라는 뮤지션의 농익은 고독과 스산한 음악적 지향이 기타라는 악기를 빌어 아무렇지 않게 배어있다. 거칠고 힘이 넘치는 결벽형 포스트/매스락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다소 심심할 수 있겠지만 느슨한 ‘외유내강’의 음악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주목해볼 만한 작품이다. 현란하고 파괴적인 실험 대신 택한 ‘Dazed and Awake’ 속 보편적인 정서가 그래서 나는 언제나 마음에 들었다. (김성대)
#48. Efterklang [Tripper] (2004)
덴마크 출신이니 어쨌든 북유럽과 가깝기도 하다…고 하면 조금은 억지일지 모르지만, 이 코펜하겐 츨신의 밴드는 그래도 이제는 꽤 익숙해진 아이슬란드 뮤지션들의 모습을 많이 연상케 하는 면이 있다. 아무래도 차가운 분위기는 Sigur Rós와 Müm 같은 밴드들에 가깝지만, 글리치 비트나 일렉트로닉스의 사용은 그보다는 Björk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사실 쓰고 보니 Autechre가 더 적절한 듯싶다). 그렇다고 사실 그런 비트감이 음악에 중심에 있지는 않다. 오히려 Sigur Rós 류의 ‘점진적인’ 형태의 심포닉(Anima String Quartet의 공도 크다)과,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매끈하게 미끄러져 나가는 크루너 보컬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는 포스트락 특유의 ‘월-오브-사운드’가 체임버 뮤직을 명민하게 흡수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Collecting Shields’ 같은 곡들에서 청자는 그 두터운 사운드의 벽 사이의 (복잡하지는 않은)음들의 배열이 직관을 타고 흘러들어옴을 경험하게 된다. (빅자니확)
#47. Fuck Buttons [Tarot Sport] (2009)
괴팍해 보이는 이름만큼이나 실제로 뒤틀린 음악을 들려주었던 데뷔작을 생각하면 [Tarot Sport]는 신기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앨범이다. 기괴하게 뒤틀린 외침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노이즈는 전작의 다이나믹을 어느 정도 내려놓으면서(일단 기타 노이즈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좀 더 반복적이지만 명확한 공간감을 구현하는 데 주력한다. 가장 유명한 곡일 ‘Surf Solar’의 그루브조차 스테이지에 어울리는 댄서블 그루브보다는 Aphex Twin 등이 어느 방구석에서 구상했을 법한 류의 그루브에 가깝다. 말하자면 [Street Horrrsing]에 비한다면야 이 앨범은 딱히 혁신적이라거나, 실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그렇지만 앨범의 장점은 그런 부분이 아니라, 일견 팝적이면서도 노이즈와 일렉트로니카를 버무린 포스트락의 ‘모범’에 가까운 음악을 싣고 있었다는 점이다. 밴드는 반복 가운데 급격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크레센도를 양가적인 감정을 실어서 표현할 줄 알았고, ‘락킹’하지는 않았지만 디스코 비트를 통해 리듬감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나름의 친절을 보여주었다. 하긴, 그렇게 친절한 양반들이었으니 David Foster도 아니면서 올림픽 개막식에 곡을 내밀 수 있었겠지. (빅쟈니확)
#46. The For Carnation [The For Carnation] (2000)
락-얼터너티브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얼터너티브 이후를 준비하던 Slint의 Brian McMahan은 새 밴드 The For Carnation의 동명 정규 데뷔작으로 진정 바라던 사운드를 완성했다. 앨범을 관통하는 소리는 슬로코어로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느릿하다. 무겁게 가라앉은 베이스와 대비되며 광활한 상상력을 일으키는 기타 사운드는, 은연중에 귀를 파고드는 노이즈와 함께 기괴한 분위기를 증폭하며 청자의 주의를 곧바로 잡아챈다. 앨범이 미국 포스트락의 중심지였던 켄터키 루이빌에서 나왔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역시 Brian McMahan의 기타가 주도하는 음산한 멜로디 라인이다. 한편 ‘A Tribute to’에 사용된 퍼커션과 기묘한 효과음에서는 동시대 영국 트립합의 기운을 옅게 느낄 여지도 있다. [The For Carnation]은 Mogwai, Mono 등 서정적이며 광폭한 감정의 진동을 주도하는 사운드로 포스트락 폭발을 이끈 밴드의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기분 나쁘게 이질적이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양 천천히 굴러가는 사운드는 고스 락, 트립합, 슬로코어 등 1990년대 이후 다양하게 분화한 각 대중음악 장르의 하부 스타일과 밀접하게 맞닿았으면서도 완전히 독자적인 자기 영역을 확보했다. (이대희)
#45. Battles [Mirrored] (2007)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선형대수학을 풀다가 친구들과 패싸움을 하는 ‘굿 윌 헌팅’의 맷 데이먼, 그리고 King Crimson과 Squarepusher를 동시에 좋아하는 나 자신. 전자는 매스락이라는 짓궂은 장르 명 때문에 떠오른 엉뚱한 생각이었으나 후자는 기막힌 음악적 통섭을 목도한 자의 감격이었다. [Mirrored]는 이래저래 두루 환대받을 수밖에 없었다. 실험적 리듬 놀이와 전기 충만한 락 기타의 커다란 그늘 아래를 들여다보면 ‘Race: In’의 예쁜 백 보컬, ‘Atlas’의 단순 무결한 드럼, ‘비창’ 교향곡 4악장처럼 사그라지는 ‘Tonto’, 앱스트랙트 힙합에 근접하는 ‘Leyendecker’와 ‘Snare Hangar’ 등등 잔재미가 가득하고, 장-단-장-단을 반복하는 트랙의 호흡도 일품이며, 결정적으로 세련된 뮤직비디오 두 편을 옆구리에 차고 나왔다. 알파고가 음악까지 손댄다면 아마 이 앨범부터 학습한다고 덤빌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또 해본다. (윤호준)
#44. Jaga Jazzist [What We Must] (2005)
‘노르웨이의 Godspeed You! Black Emperor’라 칭해도 부족함 없을 슈퍼밴드 Jaga Jazzist의 디스코그래피에서 [What We Must]는 조금 이질적 작품이다. (이 분야 적잖은 밴드가 그러하지만) 쉽게 한 장르로 구속할 수 없는 이 밴드는, 그래도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재즈, 익스페리먼틀, 일렉트로니카 등의 단어와 조금 더 가깝게 여겨졌다. 그간 밴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멜로디를 순간 활용하는 즉흥성으로 정체성을 강화했다. [What We Must]는 특히 앨범 초반부에서 이런 작법과 방향성을 달리한다. 곡의 주요 테마가 되는 멜로디는 확실히 살아있고, 분열적인 접근법은 크게 줄어들었다. ‘All I Know Is Tonight’은 Sigur Rós의 팝 버전이라 칭해도 무리 없을 정도다. 이들 후기 작품의 모티프라 여겨도 될 법한 ‘Stardust Hotel’을 지나면, 차가움과 서정미가 공존하는 ‘Oslo Skyline’이 앨범의 절정 ‘Mikado’, ‘I Have a Ghost, Now What?’을 향해 치닫는다. 이들 곡은 순간을 잡아채는 멜로디와 서정적 화음으로 앨범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더구나 이들 곡은 이색적인 전반부와 달리, 그간 쌓아온 밴드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What We Must]는 밴드의 다른 작품과 조금 결을 달리하며 출발하지만, 이 밴드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먼저 접하면 좋을 대표작이자 입문작으로 손색없다. (이대희)
#43. Set Fire to Flames [Sings Reign Rebuilder] (2001)
13명이나 되는 대편성의 밴드…보다는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Michael Moya와 Roger Tellier-Craig의 이름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사실 멤버의 절반 정도는 다 Godspeed You! Black Emperor에서 활동을 했으니 더욱 그렇고, 앨범에서 가장 먼저 받는 인상도 [Slow Riot for New Zero Kanada]와 가깝다. 그런 면에서는 본영과는 엄연히 다른 개성을 보여주던 Godspeed You! Black Emperor의 다른 프로젝트들에 비해서는 평이하게 느껴지지만, 이 멤버들의 프로젝트들 중 가장 자유로운 전개를 보여주면서 앰비언트적이면서 분위기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Set Fore to Flames일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묘사될 수 있는 포스트락 앨범은 꽤 많은 편이지만, 이 앨범만큼 다양한 감정의 파고와 분위기의 명암을 담고 있는 앨범은 확실히 거의 없다. 그리고, ‘There is No Dance in Frequency and Balance’ 등에서 우리는 포스트락의 전형적인 문법을 이 밴드가 어떻게 뒤틀어 가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어둡고 혼돈스럽지만, 밝고 재기 넘친다. (빅쟈니확)
#42. Rodan [Rusty] (1994)
때는 1980년대 후반. 막 형성되고 있었던 켄터키 루이빌 씬은 향후 미국 포스트락 씬을 견인하게 될 예정이었다. 1991년 Slint의 [Spiderland]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하드코어와 노이즈락이 만났고,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참전했으며, 멜로디는 복잡하고 수학적으로 분절된 리듬에 자리를 물려주었다. 그것은 어느 순간 “매스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스트락의 주요한 하위분야가 되었다. 켄터키 루이빌 출신 매스락 밴드 Rodan의 이 음반을 “장르의 고전”이라고 호명하는 건,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다. 씬 황금기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격정, 멜랑콜리가 버무려진 [Rusty]는 당시 미국 포스트락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다이내믹하고 음울한 순간으로 남았다.
Jeff Mueller와 Jason Noble이 주도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기타와 거친 보컬의 폭풍은 트랙 사이에서 굽이치며 파도를 이룬다. 음은 정해진 궤도를 이탈하는 것 같이 튕겨져 나가고, 보컬은 들려지기 싫다는 듯 자신의 자취를 지우며, 베이시스트 Tara Jane O’Neil의 기이한 보컬은 이 “발푸르기스의 밤”을 불태우는 비밀 연료로 작동한다. 아니, 너무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다. 접속곡처럼 이어지는 오프닝의 두 곡 ‘Bible Silver Corner’과 ‘Shiner’를 접하는 그 순간부터 몰입은 예고되어 있는 것이니까. 밴드는 1년 후 그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June of 44, Rachel’s 같은 굵직한 밴드들은 이들이 없었다면 세상에 태어났을 리 만무했다. (이경준)
#41. Sigur Rós [Untitled] (2002)
이 앨범을 꺼내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은 늘 난감하다. 우리는 이 앨범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Round Brackets(둥근 괄호)? Blank(빈)? Untitled(제목이 없는)? 이 앨범의 제목이 여자의 음부를 표현했다는 ‘썰’도 있지만 그냥 넘기자. 심지어 수록곡의 제목도 없다. 앨범의 속지조차 텅 비어있다. 가사 또한 Sigur Rós가 만든 언어 ‘Vonlenska(희망어)’로 쓰인 “You xylo. You xylo no fi lo. You so”만이 무수히 쪼개져 반복될 뿐이다. 의미? 당연히 알 수 없다.
Sigur Rós가 이 앨범에 담아낸 음악을 정의하고 설명하려고 드는 일은 언제나 실패이다. 우리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은 한정돼 있는데,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그 영역 너머에서 부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표현으로 이 앨범에 대해 무언가를 끼적이려 시도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고서는 가슴 속에 차오른 벅찬 감정을 해소할 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거운 현악 세션과 키보드 연주 사이로 들려오는 신비로운 목소리가 매혹적인 ‘Untitled#1(Vaka)’, 멜로디가 반복되고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쌓이는 동안 어느새 환상적인 풍경을 완성하는 ‘Untitled #3(Samskeyti)’, 실로폰이 결코 애들이 연주하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천상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멋진 악기란 걸 증명해주는 ‘Untitled #4 (Njosnavelin)’ 등 이 앨범이 들려주는 음악은 그야말로 공감각적이다.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이 공감각적인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를 테니, 이 앨범에 대한 감상은 온전히 청자 자신의 몫이다. 그리고 이 앨범은 듣는 장소와 계절, 시간,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독하게 여백이 많은 이 앨범은 Sigur Rós의 가장 친절하면서도 불친절한 작품이다. 그래서 마법 같다. (정진영)
#40. Jessamine [Jessamine] (1995)
Kranky 레이블을 대표하는 밴드들 중 하나였던 Jessamine은 반복되는 드론 노이즈에 아련한 멜로디와 슈게이징, 또는 크라우트락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사이키델리아를 절묘하게 담아낸 음악을 연주했다. 사실 Kranky의 ‘크라우트락’스러운 밴드를 떠올린다면야 Labradford를 먼저 얘기하는 게 맞겠지만, Jessamine은 아무래도 Cluster를 의식했을 법한 앰비언트보다는 무지크 콩크리트, 또는 Can 등을 좀 더 친숙한 형태로 변용한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사실상 시애틀에서 시작된 밴드로서는 조금은 의외의 모습이었는데, 몽환적이면서도 그만큼 어둡고 뒤틀린 면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크라우트락부터 때로는 블루스나 재즈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린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동향 밴드들과 함께 놓더라도 그리 붕 뜨지만은 않을 것이다(Sky Cries Mary를 생각하더라도 그렇다). 피드백의 영리한 사용을 보여주는 ‘Royal Jelly Ice Cream’이나 밴드 특유의 사이키델리아를 상징하는 ‘Another Fictionalized History’만으로도, 90년대 초반의 밴드들이 새로운 사운드를 위해 거쳐왔던 많은 고심들이 다양하게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아마도 본작 최고의 미덕은 거기에 있겠거니 싶다. 덕분인지 술 한 잔 하면서 듣기에 더욱 좋다. (빅쟈니확)
#39. Flying Saucer Attack [Further] (1995)
브리스톨 출신의 밴드라기보다는, Dave Pearce를 중심으로 한 좀 더 느슨한 형태의 ‘모임’에 가까웠던 Flying Saucer Attack은 브릿 팝이 절정의 성과를 슬슬 보여주던 시점에서 의도적인 로우파이/아날로그 사운드와 아방가르드 노이즈, 슈게이징, Popol Vuh를 위시한 크라우트락의 성과들 등을 극한에 가까울 피드백 노이즈 아래 버무려낸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그 ‘극한의’ 피드백을 제대로 주무르기 시작했던 앨범은 [Further]였다. 말하자면, Flying Saucer Attack 스타일이 비로소 완성되었던 것은 본작에서였다. [Flying Saucer Attack]이나 [Distant]에 비해서는 덜 무조적이면서도 더 두터운 피드백 사운드와 함께 바람에 넘실거리는 듯한 앰비언트의 흐름 속을 은연중에 꿰뚫는 Nick Drake 풍의 포크 테이스트(특히나 ‘Come and Close My Eyes’)는 청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Rural Psychedelia’의 정점. (빅쟈니확)
#38. Grails [Take Refuge in Clean Living] (2008)
Grails를 좋아하는 이라면 극단의 광기를 아무렇지 않게 들이미는 [Doomsdayer’s Holiday] (2008)나 비슷한 사운드 구성으로 전혀 다른 건조함과 냉정함을 표현한 [Deep Politics] (2011)를 최고작으로 꼽곤 할 것이다. 나는 이 두 명반이 본작을 뿌리로 각기 다른 장르와 접붙이기 한 과실이라고 생각한다. [Take Refuge in Clean Living]엔 밴드가 훗날 펼치게 될 모든 사운드와 테마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다고 확신한다. 부슬거리는 비와 튤립 축제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아시안 이민자들의 에스닉 푸드를 자신 있게 내놓는,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개성 있는(“Keep Portland Weird”) 밴드의 근거지 포틀랜드와 Grails의 음악은 참 많이 닮아있다. 한 마디로 장르의 보편을 거부하는 사운드다.
가청 공간 여기저기를 벨과 혼, 하프시코드, 다양한 에스닉 현악기 소리가 부유하지만 힘 있는 베이스 라인이 여느 스토너락 밴드 이상의 존재감으로 전체 사운드를 견인한다. 원조 서프 뮤직 밴드 The Ventures의 ‘11th Hour’를 세 번째 트랙으로 커버하고 있는데, 원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Grails가 추구하고자 하는 극적인(dramatic) 음악이 어떤 것인지 감지할 수 있다. 드넓은 공간감과 긴 호흡을 가진 악곡으로 채워졌지만, 변박과 캐치한 멜로디의 기타 연주가 번뜩이며 스윽 치고 들어온다. 방랑자의 예측할 수 없는 여정을 그린 로드무비 OST처럼 흐르던 음악 위로 슬쩍 오버드라이브를 건 자글거리는 기타와 둔탁한 베이스가 이끄는 스토너/슬럿지 락이 푹 치고 들어오다 정신 차려보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어떤 식으로건 장르의 보편적인 사운드로 수렴될 듯한 연주로 흐른다 싶을 즈음 꼭 한 번씩 뒤통수를 치는 구성이다. 장르의 보편성과 밴드의 특수성을 고루 갖춘 매력적인 작품이다. (조일동)
#37. Do Make Say Think [Winter Hymn Country Hymn Secret Hymn] (2003)
대부분의 장르는 어떤 감정 혹은 정서로 대변된다. 포스트락이라면 일단 행복이나 평화는 아니고, 슬픔과 분노에 가깝다. 캐나다 포스트락 밴드들의 성과 중 하나는 이 감정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장르의 방법론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는 것이고, Do Make Say Think는 그 부분에서 가장 정통한 밴드다. 덕분에 앨범은 정해진 결말을 향하여 감정을 쌓아 나가는 도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필요 없이 매 트랙마다 결론으로 직행하고, 대부분 성공적으로 의도를 전달한다. 앨범에서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Winter Hymn Country Hymn Secret Hymn]를 두고 할만하다. (서성덕)
#36. I’m Not a Gun [We Think as Instruments] (2006)
미국 테크노 DJ와 일본 기타리스트의 기묘한 조합이었던 이 듀오는 덕분에 동시대의 다른 ‘포스트락’ 밴드들에 비해서 확실히 일렉트로니카에 기울어 있던 음악을 연주했지만, [We Think as Instruments]는 일렉트로닉 외에도 다양한 면모들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앨범이었다. 청량감 있는 ‘쟁글’ 기타에 일가견이 있는 Takeshi Nishimoto는 전작보다 좀 더 에너제틱한 리프를 연주하기도 하고(‘Long Afternoon’), 그러면서도 시타를 이용한 사이키델리아를 시도하기도 한다(‘A Letter from the Past’). 앨범 전반에 깔려 있는 재즈 바이브도 확실히 전작들에서 확인할 수는 없었던 모습이다. 곧 청자들은 앨범을 통해 그리 팍팍하지 않지만 친숙한 ‘도회적인’ 모습은 물론, 여유 있으면서도 나름의 역동성을 가진 ‘그루브’를 발견하게 된다. [Blue Garden]의 좀 더 밴드 지향적인 사운드와 비교해 보더라도 즐거울 것이다. (빅쟈니확)
#35. Hood [Cold House] (2001)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음반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Chris Adams와 Richard Adams 형제가 이끈 영국의 포스트락 밴드 Hood의 다섯 번째 음반 [Cold House]는 후속작 [Outside Closer]와 더불어 2000년대 영국 포스트락 씬에 깊숙이 새겨질 보석이 되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했듯, 대중적 파급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 “포스트락” 같은 분야에서라면 더욱.
[Cold House]는 혁신적인 전환이었다. 밴드는 전편을 관통하는 뇌쇄적인 IDM 사운드를 통해 기존에 했던 기타 락 톤을 효과적으로 탈색했고, Radiohead가 [Kid A]를 통해 미리 선을 보였던 새 시대 락의 방향성을 자신의 영역에서 더욱 구체화된 언어를 통해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다양한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They Removed All Trace That Anything Had Ever Happened Here’은 빈티지한 로맨스를 선보였고, 싱글로 커트되었던 ‘You Show No Emotion at All’은 힙스터들의 발장단을 맞추게 했으며, ‘The River Curls Around the Town’은 포스트락 특유의 하강의 미를 담아냈다. 첨단과 노스탤지어가 어색한 듯, 신기한 듯 상대의 눈을 마주한다. (이경준)
#34. Toe [The Book About My Idle Plot on a Vague Anxiety] (2005)
포스트락 중에서도 흔히 매스락으로 분류되는 Toe지만, 일반적인 매스락 밴드의 음악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특히, 루이빌-시카고 씬의 매스락과는 같은 매스락이라고 해도 사운드가 완연히 다르다. 사변적이거나 관념적인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며, 그들보다 훨씬 서정적인 사운드를 구사한다. Toe의 데뷔작인 본 음반은 그러한 특성을 명백히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청명한 멜로디 라인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물론 [For Long Tomorrow]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짜임새 면에서 이 음반이 반보 정도는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트랙 ‘孤独の発明 (Kodoku no Hatsumei)’만 들어봐도 밴드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잘 들리는 포스트락.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매스락. 하지만 그것이 단순하고 쉽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밴드보다 변박과 템포 조절을 잘 활용하는 게 Toe다. 테크닉을 내세우지 않지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 실력이 가늠된다. ‘向こう岸が視る夢 (Mukougishi ga Miru Yume)’에서 잘게 썰어 들어가는 Kashikura Takashi의 드러밍을 듣고 있으면 더욱 그러하다. 싱글 단위로 들어도, 음반 단위로 들어도 매혹될 수밖에 없는 훌륭한 포스트락 음반이다. 개인적으로는 눈부신 아침 햇살에 어울리는 ‘All I Understand Is that I Don’t Understand’를 좋아한다. (이경준)
#33. Unwound [Leaves Turn Inside You] (2001)
밴드의 스완송이 된 [Leaves Turn Inside You]는 간간이 느껴지는 대곡 지향적 구성, 펑크를 배반하는 듯 긴장감 넘치는 곡 구조로 포스트락 역사에서 거론해야 할 지위를 이 밴드에 주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Terminus’에서 긴장감을 고조하는 전반부를 지나 Godspeed You! Black Emperor와 같은 포스트락 밴드의 곡에서 엿볼 수 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해 곡의 구조를 바꾼 게 대표적 예다. 치밀하게 절정을 향해 질주하는 앨범의 분위기에서 밴드의 뿌리가 펑크임을 엿볼 수 있으나, 이제 그 흔적은 희뿌옇게 퇴색했다. 앨범을 관통하는 사운드는 다양한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한 밴드의 역사를 분열적으로 나열한다. 소박하게 느껴지는 보컬이 불안한 메인 테마를 타고 흐르는 ‘Demons Sing Love Songs’는 이 시대 인디 팝 사운드처럼 여겨질 정도다. 불협함 가운데서 언뜻 내비치는 서정적 정서는 꽉 짜인 긴장감과 대비되며 앨범의 수준을 밴드의 역사에서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Unwound는 2000년대 들어 폭발한 주류 포스트락 밴드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러나 [Leaves Turn Inside You]는 혼란함과 긴장미를 균형 있게 펼친 가운데, 포스트락의 방법론을 부분적으로 차용함으로써 후대 락 마니아들이 밴드의 이름을 끊임없이 되새기게끔 했다. (이대희)
#32. Shipping News [Flies the Fields] (2005)
Jaga Jazzist나 Godspeed You! Black Emperor의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듯, 특히 포스트락 씬에서 분화와 새로운 결합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June of 44, The For Carnation의 전·현직 멤버들이 뭉친 나름의 슈퍼그룹 Shipping News 역시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1990년대 매스락의 작법을 따르던 밴드는 호평 받았던 데뷔작 [Save Everything]과 다른 방식으로 [Flies the Fields]를 완성했다. 밴드의 독자성을 완결한 앨범 사운드는 보다 침울하게 가라앉았으며, 기타의 멜로디 주도권은 확연히 커졌다. [Flies the Fields]는 시종일관 비관의 정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느긋하게 이어지다 느닷없이 폭풍처럼 밀어붙이는 곡 구조로 완성됐다. ‘Untitled W/ Drums’, ‘Sheets and Cylinders’, ‘Paper Lanterns (Zero Return)’은 이 분열하는 앨범의 특성을 상징하는 곡이다. 앨범은 1980년대 이후 줄곧 발전한 (굳이 이렇게 이름붙일 수 있다면) ‘루이빌 사운드’를 집대성했다. 미국 포스트락 발전사의 한 순간을 명징하게 드러내는 우량 대차대조표다. (이대희)
#31. 65daysofstatic [The Fall of Math] (2004)
2000년대로 접어들며 포스트락 씬에 나타난 동향 가운데 하나는, 프로그레시브와 재즈로부터 크게 영향 받은 기타 인스트루멘틀락/매스락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키보드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 앰비언트 사운드가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어느 첨점에 Sigur Rós 같은 밴드가 있다는 건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지, 기존 어법을 그대로 활용해 호평 받은 팀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간 지대에 위치한 팀도 존재했다. 여기 65daysofstatic이 바로 그런 팀이다. 밴드는 복합리듬/급격한 템포조절/비선형적 악곡이라는 매스락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품으면서도 글리치/리듬앤베이스 등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이는 아주 실험적인 결과물로 조립되었고, 데뷔작 [The Fall of Math]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 점에서 ‘매스의 쇠락(The Fall of Math)’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저 타이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치 2000년대 매스락의 새 지평을 선포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쪼개고 쪼개는 드럼 비트를 앞세운 포스트하드코어 사운드로 강렬하게 몰아붙이는 싱글 ‘Retreat! Retreat!’ “응축-폭발”이라는 전형적 포스트락 미학을 살짝 비튼 ‘Fix the Sky a Little’ 등 수록곡들에서 저 말이 허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경준)
#30. Caspian [Waking Season] (2012)
미국 매사추세츠 출신 밴드 Caspian은 2000년 이후 씬에 선을 보인 포스트락 밴드 중 단연코 최상위 클래스에 위치하는 밴드다. 세 번째 정규작 [Waking Season]은 그 중에서도 단연 발군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사운드 배치, 층에 층을 쌓으며 서서히 구조물을 쌓아 올려가는 트랙의 전개, 탈출에 목마른 격랑처럼 한 번에 터져 나오는 클라이맥스. 이 모든 면을 감안할 때 그러하다. 맞다. 이것은 포스트락 특유의 클리셰다. 허나, 이 작품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클리셰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드는 언젠가부터 장르 내부에서 “인습”으로 여겨진 공식들을 남들이 해보지 못한 저 끝까지 밀어붙였고, 그 결과 빛나는 작품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 음반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 ‘Gone in Bloom and Bough’를 들어보자. 이들이 클리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징표다. 심연을 건드리며 이륙하는 신스 루핑-절묘하게 조응하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기타-다시 속도를 줄이며 착륙. 곡을 통해 밴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문법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다면 음악은 언제나 당신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 마지막 트랙 ‘Fire Made Flesh’에서 이 말을 다시 떠올려보라. 스타일을 다변화시킨 2015년작 [Dust and Disquiet]도 일청을 권한다. (이경준)
#29. The Mercury Program [A Data Learn the Language] (2002)
이 플로리다 출신의 밴드는 [All the Suits Began to Fall Off] EP부터 보컬을 버리고(뭐 그전에도 그리 비중이 크지는 않았다) 인스트루멘탈 밴드로 거듭났고, 이 앨범 또한 Tortoise의 모습을 지울 순 없는 인스트루멘탈을 담고 있다(이름과는 달리 스페이스락의 느낌은 생각보다 별로 없다). 다만, 이들의 경우 ‘통상적인’ 밴드의 편성으로 밴드음악보다는 차라리 전자음악에 가까운 느낌을 낼 줄 알았고, 덕분에 다른 Tortoise의 레플리카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존재였다. 이들의 최대 강점은 리버브와 딜레이에 침잠한 기타와 신서사이저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때로는 파트간의 긴장을 통해 나름의 역동성을 보여줄 줄 알았다는 점이다(‘Gently Turned Your Head’). 아무래도 포스트락에서는 보기 드문 비브라폰의 전면적인 사용 또한 이러한 역동성에 기여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The Mercury Program은 Tortoise의 음악과 Steve Reich 풍의 전자음악 무드를 조금은 역동적인 형태로 결합하여 새로운 시대의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낸 셈이었고, 이들이 보여주는 음악의 ‘언어’를 통한 경험은 단순한 데이터 이상의 것이었다. (빅쟈니확)
#28. Yndi Halda [Enjoy Eternal Bliss] (2006)
서정적으로 출발하지만, 그 어떤 장르와 비교해도 움츠러들지 않을 만큼 감정의 기복을 벌려 놓으면서 침착과 폭발을 고스란히 담아 놓는다. 특히 첫 트랙 ‘Dash and Blast’는 노래 제목만큼 절정에 다가가려는 모습과 그에 따른 억제를 두 번에 걸쳐 선보이는데, 이를 통해 전달된 뚜렷한 기승전결은 곡의 하이라이트를 명확히 안내한다.
많은 악기가 동원되지 않았음에도(기타, 베이스, 드럼, 바이올린), ‘구조’만으로 곡마다 커다란 서사(Narrative)를 담아낸 것이 [Enjoy Eternal Bliss](2006)의 매력이다. 포스트락에 집중하는 매체들이 이 음반에 주목한 건, 하나의 영상에서나 느낄 수 있던 처음과 끝의 순서가 정공으로 담겨있기 때문. 나아가 이토록 작지 않은 규모의 감동을 노련한 경험자가 아닌, 학교 친구들이었던 다섯 소년이 모여 풀어헤쳤다는 점은 앨범이 더 특별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종민)
#27. Bowery Electric [Beat] (1996)
당연히 My Bloody Valentine의 그림자 밑에 있는 밴드였지만(물론 그런 면은 [Bowery Electric]에서 훨씬 심각하다) [Beat]의 음악은 슈게이징이란 말로는 표현되지 않을 많은 부분을 함축하고 있었다. 드론 기타와 이어 등장하는 조금은 느슨하면서도 울림이 명확한 베이스, 때로는 힙합 레코드에 더 어울릴 법한 비트(어쨌든, 앨범에는 ‘인간’ 드러머가 없는 곡이 더 많았다) 등이 만들어내는 음악은, 2016년 현재 생각나는 포스트락의 ‘전형’보다는 오히려 트립합, 앰비언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많다. 그렇지만 밴드는 이미 데뷔작에서 꽤 노련하게 보여주고 있던 포스트락의 ‘월 오브 사운드’를 나름의 방식으로 새롭게 구현하고 있고, 오히려 그런 포스트락의 ‘문법’이 어떻게 앰비언트와 트립합에 이르게 되는지에 관한 하나의 ‘전형'(그리고, Mazzy Star 같은 밴드들이 보여줄 수 없었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너스트랙인 ‘Low Density’가 느슨한 비트가 있긴 하지만 번듯한 앰비언트 트랙이라는 점은 지금 생각하면 더욱 인상적이다. (빅쟈니확)
#26. A Silver Mt. Zion [He Has Left Us Alone but Shafts of Light Sometimes Grace the Corner of Our Rooms…] (2000)
A Silver Mt. Zion, The Silver Mt. Zion Memorial Orchestra & Tra-La-La Band, The Silver Mt. Zion Memorial Orchestra and Tra-La-La Band with Choir, Thee Silver Mountain Reveries. 열거한 모두가 같은 밴드이다. 그리고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저 유명한 Godspeed You! Black Emperor와 떼어놓고 말할 수 없는 밴드이기도 하다. 밴드의 요체를 이루는 멤버 셋, 베이시스트 Thierry Amar, 기타리스트/키보디스트 Efrim Menuck, 바이올리니스트 Sophie Trudeau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A Silver Mt. Zion의 이름으로 발표한 [He Has Left Us…]는 Mogwai/Godspeed You! Black Emperor부터 출발하는 2세대 포스트락 씬을 대표하는 음반이자 본인들의 커리어 베스트 음반 중 하나이다.
음반은 세상의 모든 우울과 비참을 빨아들일 듯 시작한다. 회색빛 드론 사운드로 가득한 오프닝 ‘Broken Chords Can Sing a Little’은 사뭇 상징적이다. 의미 없는 읊조림과 비장미 머금은 현악의 결합을 통해 기묘함을 선사해주는 ‘Sit in the Middle of Three Galloping Dogs’, 클래시컬한 소품 ‘Movie (Never Made)’,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진혼곡 ‘13 Angels Standing Guard ’round the Side of Your Bed’ 등은 모두 적절한 위치에 배치되어, 음반의 무드를 통제한다. Godspeed You! Black Emperor보단 체임버 팝의 무드에 더 가깝고, 더 내밀하다. 또, 어떤 점에선 더 걸출하다. 이 “고독과 신비의 베일”에 싸인 작품은 투어 도중 암으로 생을 마감한 Efrim의 개 완다(Wanda)를 위해 레코딩되었다. (이경준)
#25. God Is an Astronaut [All Is Violent, All Is Bright] (2005)
포스트락이 스타일로 자리 잡고 동어반복처럼 보이기 시작할 때, God Is an Astronaut은 그 가치를 묘하게 뒤집어 보여준다. 이들은 전형적인 얼터너티브락처럼 보이는 재료들을 꺼내어 놓은 다음, 그것들을 전혀 다르게 요리한다. 노래를 지우고, 멜로디를 덜어내고, 반복과 변화로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며, 포스트락이 애초에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던 이유를 다시 불러온다. 역사적으로 음악이 언어적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무엇인가 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때때로 우리는 답을 얻는다. (서성덕)
#24. This Will Destroy You [Tunnel Blanket] (2011)
This Will Destroy You은 샌프란시스코와 텍사스 출신의 멤버로 구성된 밴드다. 밴드 이름은 얼핏 들으면 분노와 폭력적인 음악을 선사할 것 같지만, 꽤나 어둡고 진중하면서 광활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느리고 조용하게 시작하는 12분짜리 대곡이자 첫 곡인 ‘Little Smoke’부터 인상적이다. 기타 드론 사운드가 짙게 깔리는 ‘Communal Blood’, 이어지는 ‘Killed the Lord, Left for the New World’은 슈게이즈와 앰비언트의 접점을 아름답게 묘사한 곡이다. 끝으로 ‘Powdered Hand’이 만들어 내는 잡음과 정적은 앨범 [Tunnel Blanket]의 핵심을 관통하는 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어두운 시간을 지나 마침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순간(혹은 죽음)을 압도적인 사운드 스케이프로 아름답게 표현해냈다. 밴드 This Will Destroy You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김종규)
#23. June of 44 [Four Great Points] (1998)
확실히 근자에는 이런 변박과 기발하게 치고 들어오는 연주를 선보이는 밴드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렇게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밴드는 Tool을 포함해서 몇 팀 되지 않았다. 매스코어(mathcore) 혹은 매스락(math-rock)이라 일컬어지던 밴드들이 만들어 낸 음악에는 펑크의 똘끼와 프로그레시브 록의 정교함이 버무려져 있다. 또한 이들은 특별한 음색(timbre)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는데, [Four Great Points]에 담긴 드럼, 베이스, 기타 리프와 솔로를 하나하나를 집중해 들어보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당시 주류 락에서 소위 “잘 붙는다”고 알려졌던 드럼-베이스, 베이스-기타, 기타 리듬-솔로의 표준적인(?) 톤 조합 사이를 묘하게 비껴가는 기발한 음색이 번뜩인다. 그렇다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의 조합으로 엇나가는 것도 아니다. 익숙함을 거세한, 그러나 의외로 쩍쩍 달라붙는 June of 44만의 음색이 강렬하다.
앨범 전반에 걸쳐 칼 같은 멤버들의 연주력 역시 귀를 채간다. 초기에는 정교하게 계산된 연주를 날카롭게 벼려냈던 (테크니컬 데스메탈-코어 사운드에 가까운) June of 44의 이력이 슬그머니 묻어나는 대목이다. 음색과 톤은 달라졌지만 유니즌에서 갑자기 상대의 연주 패턴을 찢고 거부하는 신경질적이고 위악적이면서도 정교한 연주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긴 보잉으로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바이올린 연주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에도 익숙한 소리나 뻔한 음악으로 절대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잡하거나 어려운 사운드도 아니다. 치밀한 연주의 승리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다. 포스트락이라는 이름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쏟아진 다양한 시도들을 뭉뚱그리던 명칭에서 하나의 장르로 수렴되기까지 10여 년 사이에 어떤 소리 실험이 존재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기도 한 명연, 명반이다. (조일동)
#22. Russian Circles [Enter] (2006)
[Enter]는 시카고 출신의 포스트메탈 밴드 Russian Circles의 정규 데뷔작이지만, 수록된 여섯 곡들 중 단 두 곡(‘Micah’와 ‘Enter’)을 빼면 자신들의 셀프타이틀 미니앨범에서 이미 선보인 것들이다. 락 이후의 락, 락을 넘어서는 락을 선택한 밴드답게 철저히 연주(jam)로만 일관하는 이들의 묵직한 심연은 분명 Tool의 느낌에 많이 닿아 있지만 리버브(reverb) 짙게 먹인 아르페지오 기타 톤은 역시 이들을 포스트‘락’의 범주에도 넣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락이냐 메탈이냐 자체가 이미 시작부터 말장난이기에 이러한 구분이 무의미한 것은 알지만, 사운드의 농도와 표현(연주)의 방법론에 있어 또 그만큼 분명한 구분은 없기에 사실 마냥 허무한 선긋기인 것만은 아니다. 가령 ‘Death Rides a Horse’의 박진감을 ‘모던한 Iron Maiden’이라 표현할 수 있는 지점은 Russian Circles가 평론하는 자들에게 베푼 군침 도는 얘깃거리인 것이다. 오버 더빙을 한 것으로 보이는 Mike Sullivan의 눈보라 같은 기타 톤, 틀에서 벗어나 틀을 만드는 Dave Turncrantz의 확신에 찬 드러밍이 모든 것을 이끄는 가운데 이들은 로로스나 비둘기우유 보다 아폴로18과 앵클어택을 좋아하는 국내 포스트락 팬들에게 크게 어필할 실력을 뽐낸다. 앨범 제목처럼 포스트락에 처음 들어서는(enter) 이들과 이미 들어선 자들의 귀를 똑같이 지배할 거대한 음악이 이 앨범에는 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음악은 직접 들어봐야 아는 거다. (김성대)
#21. Gastr del Sol [Upgrade & Afterlife] (1996)
밴드가 창작 집단이라면, 그래서 개별 아티스트가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위해 집중하고 복무하는 집단이라면, 그리고 그 각각의 아티스트가 완결된 자기 세계를 가지되 그것의 충돌을 꺼리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에 대한 역사적 답변 중 하나가 여기 있다. 포스트락이 일종의 전형성을 띄기 이전에 David Grubbs와 Jim O’Rourke는 팝-포크 감성과 사운드 실험의 결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가 예상을 뛰어넘어 보편적인 취향을 자극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형태적 완성 이전에 의도로서 완성되어 있고, 그래서 쉽게 낡지 않는다. (서성덕)
#20. Jim O’Rourke [Bad Timing] (1997)
기타리스트 Jim O’Rourke는 독보적으로 넓은 발을 자랑한다. 아마도 프로듀서와 믹싱 작업가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을 법한 Wilco의 [Yankee Hotel Foxtrot], [A Ghost Is Born]이 우선 떠오른다. 그는 Joanna Newsom, Beth Orton, Stereolab, John Fahey 등 굵직한 이름의 뮤지션 앨범 제작에도 참여했고, 그 무엇보다 Sonic Youth 멤버로서 활동했다. 이쯤 되면 그의 이력 어디에 밑줄을 그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Bad Timing]은 시카고 씬을 중심으로 활동했음에도 주변부적 음악 작업가로서 오해받기 쉬울 법한 Jim O’Rourke가 대중음악계의 거대한 줄기로 자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Drag City와 계약을 맺은 후 처음 내놓은 이 음반의 성공으로 대중의 귀를 잡아채기 시작했다. 앨범에는 아메리칸 기타 사운드에서 익스페리멘틀에 이르는 넓은 범위의 작업 세계를 가진 그의 토대가 응축되었다. 영화감독 Nicholas Roeg가 1980년 제작한 동명의 영화에서 이름을 딴 이 앨범에는 보컬이 없고, 싱글의 타이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앨범은 Jim O’Rourke가 미국 대중음악의 여러 갈래를 혼합해 주조한, 명상적이고도 귀를 잡아채는 전복이 있는 기타 주도의 연주곡으로 완성되었다. 그의 명징한 핑거링은 적잖은 곡에서 편안히 곡의 테마를 연주하다 불현듯 끼어드는 멜로디와 불협하며 곡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전환한다.
Jim O’Rourke는 포크와 컨트리, 재즈의 뼈대를 시카고 포스트락 씬 조력자들의 손을 빌려 영리하게 비틀었다. 덕분에 [Bad Timing]은 편안한 감상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이고 기묘하다. 음반을 포스트락의 중요한 자산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이며, 동시에([Eureka] 이전에 나왔기에 더욱 그러하므로) Jim O’Rourke 솔로 이력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만한 이유다. 제목과는 달리, 끝내주는 타이밍에 그의 정수를 녹여낸 앨범이다. (이대희)
#19. Rachel’s [The Sea and the Bells] (1996)
멤버의 사망으로 이제 더이상 볼 수 없는 밴드 Rachel’s는 기본적으로 피아노와 비올라, 첼로로 구성한 음악을 펼친다. 다른 포스트락 계열 밴드에 비해 클래식 음악과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를 아주 적극적으로 통합하려는 시도했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임에도 그 속에 숨겨진 밝고 희망적인 테마가 이들의 음악적 특징이다. Rachel’s의 세 번째 앨범인 [The Sea and the Bells]는 다양한 악기의 사운드와 광활하면서도 우울한 스토리가 돋보이는데, 이들의 가장 잘 알려진 앨범으로 꼽히는 [Music for Egon Schiele] (1996)와 동년에 나왔다고는 쉽사리 생각하기가 어렵다. 이후 등장한 수많은 체임버팝, 포스트락 밴드들에게 영향을 준 Rachel’s의 작품이기에 체크해야 할 앨범. (김종규)
#18. Hammock [Raising Your Voice… Trying to Stop an Echo] (2006)
앨범은 구성부터 의외스럽다. 이미 포스트락의 많은 거물들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18곡에 76분이라는 구성은 조금은 난삽해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앰비언트와 드림팝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겠지만, 굳이 따진다면 뉴에이지 음악이나 Vangelis의 일면, 때로는 은근한 블루스의 풍모를 발견할 수 있기까지 한 ‘Losing You to You’는 물론이고, 의외로 앞을 예상키 어렵게 하는 많은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양가적인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가사(보컬이 있는 곡은 사실 3곡 뿐이지만)와 연주도 그런 면모에 기여한다. 그러면서도 앨범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면서도 ‘깊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미덕일 것이다. 아무래도 드림팝보다는 앰비언트에 기울어 보이는 건 그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듀오의 근래의 모습이 좀 더 다이내믹한 편이라면([Departure Songs]라든가), 이 앨범에서 Hammock은 약간의 다이내믹을 포기할지언정 다른 밴드들이 거의 이르지 못했던 초현실적인 공간감을 성취했던 셈이다. (빅쟈니확)
#17. Moonshake [Eva Luna] (1992)
[Eva Luna]는 1992년에 영국 밴드가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한 장에 쓸어 담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키워드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영국 인디의 기타 락, 포스트-펑크, 슈게이징, 재즈, 샘플링, 힙합 혹은 훵키한 리듬, 덥 혹은 트립합 등. 가장 간단하게는 The Pop Group의 ‘Pop’ 버전이라고 해도 좋다. 이 어지러움은 완결된 형태를 지향하는 대신 하나의 밴드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묻는다. 그 결과는 어떤 이들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고 여기고, 또 누군가는 이들이 지나치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이들의 잘못이라면 이런 일을 벌이기 전에 히트 앨범 한두 개가 없었다는 것 정도다. (서성덕)
#16. Labradford [Labradford] (1996)
주지하다시피, 포스트락을 하나의 구체화된 장르 형태로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이 명칭이 프리 재즈, 아방가르드, 노이즈락, 펑크, 하드코어, 헤비메탈, 전자음악, 체임버 팝. 심지어 클래식까지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운드의 결이나 질감으로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좌우간, 이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든 Labradford는 간과할 수 없는 밴드이다. 더구나 이 버지니아 출신 밴드의 사운드가 잔뜩 물오른 세 번째 정규작 [Labradford]는 이들의 이름이 1990년대의 포스트락의 거대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증명하는 좌표다.
기괴하게 울리는 베이스라인, 곳곳에 삽입된 기기묘묘한 샘플링, 퀘벡 사운드가 그냥 탄생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슬픈 스트링과 드론 사운드. ‘Phantom Channel Crossing’, ‘Midrange’, ‘The Cipher’ 등을 들으면 쉽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슈게이징에서 한발 더 나아간, ‘앰비언트와 포스트락의 접점’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이 음반의 의의는 크다. ‘Lake Speed’ 같은 트랙들이 제대로 예증하듯, 음악은 서사(narrative)를 간직한 채로 자신만의 무드(mood)를 열어젖힌다. Brian Eno나 Tangerine Dream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고, Sonic Youth가 생각나는 지점도 있다. 유럽 조상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미국 선배들의 유산을 착실하게 상속한 영리한 작품이다. 극히 소수의 몇몇 밴드를 제외한다면, Labradford보다 영민한 포스트락을 들려준 밴드는 없었다. (이경준)
#15. Swans [My Father Will Guide Me up a Rope to the Sky] (2010)
Swans는 1980년대에 첫 등장했을 당시 포스트펑크 밴드 중에서도 다양하면서 난해한 사운드를 구사하기로 유명했다. 이들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활동 중단을 선언하는데, 2010년에 14년만에 재결성하여 11번째 스튜디오 앨범 [My Father Will Guide Me up a Rope to the Sky]를 발표해 압도적이면서 기묘한 음악들로 가득 채워 냈다. 전작들을 가볍게 뛰어넘는 복잡한 구조와 광활한 스케일, 격정적인 사운드는 듣는 이의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날려 버리기 충분하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밴드 리더 Michael Gira의 절대적인 영향력은 한층 강화되었고 Swans는 본격적인 포스트락 밴드로서 포지셔닝을 취하게 된다. 여전히 정력적인 음악 활동을 펼치는 Swans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앨범이다. (김종규)
#14. Disco Inferno [D.I. Go Pop] (1994)
Joy Division과 Wire의 영향을 받은 네 명의 십대 소년이 1989년 결성한 Disco Inferno는 활동하는 내내 정규앨범으로는 단 석장만을 남기고 미련 없이 팬들 곁을 떠난 수수께끼 같은 팀이다. 마치 “우리가 어떤 음악을 한 건지 너네 맘대로 알아맞혀봐”라며 숙제를 남기고 훌쩍 떠난 것처럼. 짧은 활동기간 때문에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사실 Disco Inferno는 포스트락이 우리가 상상하는 형태로 제 모습을 갖추기 전에 이 장르의 지향점을 일찌감치 제시하고 다듬는 역할을 맡았던 중요한 팀이다. 두 번째 앨범이자, 세간에서 이들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하는 [D.I. Go Pop]의 발매시기가 1994년이라는 것은, Tortoise의 [Millions Now Living Will Never Die]가 1996년, Mogwai의 [Young Team]이 1997년 발매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왜 이 앨범이 포스트락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이 앨범을 지금 시점에서 들을 때는 한가지 사실도 꼭 염두에 둬야 한다. 포스트락이 2000년대 들어 서정-폭발 구조로 유행하기 이전에 ‘포스트락’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뼈대를 한창 조립해나가기 위해 만든 앨범이라는 것. 30여분에 걸친 이 기막힌 ‘소음’들이 더 이상 소음이 아니라고 느낀다면, 당신은 이제 포스트락을 졸업해도 된다. (김봉환)
#13. Pram [The Stars Are So Big, the Earth Is So Small… Stay as You Are] (1993)
초기 Pram의 사운드를 영화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일종의 요약이다. 크리스마스의 호러적 변용 혹은 어린 아이의 천진함이 오히려 오싹함을 주는 장르물을 보는 듯한, 유아적 상상력을 동반하는 스산함에 대하여 한 마디의 표현이다. 그 바탕에는 Rosie Cuckston의 보컬과 의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정도의 조악한 녹음,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특유의 악기 운용이 놓인다. 이것은 당대에 비교되던 Stereolab과 동일한 팔레트처럼 보이지만, 정서적인 궤도를 달리하여 완전히 구별되는 독보적인 기억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들은 위악적으로 의도한 바가 아니라 어떤 총합의 결과로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음악을 했다. 덕분에 Too Pure 레이블의 사운드를 크라우트락 전통의 연장에서 확장하여 스토리텔링을 지향하는 미국 중심의 포스트락과 연결하는 고리가 된다. (서성덕)
#12. Don Caballero [Don Caballero 2] (1995)
난파된 5, 7, 11박과 안어울림음, 노이즈 조각들이 떠내려 와 형성된 기암성(奇巖城).
후기 King Crimson을 연상시키는 변박 리프, 변덕스러운 진행이 긴 드론 노이즈로 마무리되는 11분 넘는 곡 ‘Please Tokio, Please THIS IS TOKIO’는 압권. 포스트락보다 매스락 쪽이 어울린다. 장르 이름은 사실 무색하다.
저음 라인과 하모닉스, 노이즈를 교배시키는 리프들은 변태적이다. 기타가 이들을 끝없이 늘어놓으며 리듬 악기처럼 구는 가운데 분방한 드럼이 되레 리드 악기 역할을 떠맡고 있다. Damon Che의 강력하면서 유려한 드럼 연주에 초점을 맞추고 들으면 단음 리프 중심의 악곡 너머에 있는 입체감을 만끽할 수 있다. 우리야 가끔 들으면 되지만…. 이 팀 제정신 아니다. (임희윤)
#11. Explosions in The Sky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2003)
EITS는 가장 팝적이고 대중적인 포스트락 밴드 중 하나다. 이 계열 팀들 중에서는 Sigur Rós와 함께 국내에서의 인기와 인지도도 제일 높은 편이다. 이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유려한 사운드스케이프는 포스트락 초심자들도 큰 부담 없이 흡수할 만하다. 음악이 영화와 광고에 가장 많이 쓰이는 팀이기도 하다. 이름과 음악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북유럽 밴드일까?’했지만 사실 텍사스 주 오스틴출신이다. 당시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ETIS는 대표작인 3집에서 전매특허인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소리피라미드 쌓기의 진수를 들려준다. 기타 아르페지오가 선사하는 아름다움, 잘 계산된 구성의 드라마틱함이 어우러져 황홀한 청각경험을 선사한다. ‘이 연주에 Sigur Rós의 Jónsi같은 멋진 보컬이 얹혔으면 어땠을까?’하는 뜬금없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정원석)
#10. Mono [You Are There] (2006)
베토벤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베토벤의 음악에서 전해지는 슬픔과 기쁨 같은 인간의 감정을 자신들의 음악에도 담고자 했다. 베토벤을 비롯한 고전음악을 들으면서부터는 예전만큼 락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았다. 일본에서 결성해 월드클래스 밴드가 된 Mono의 배경에는 이 같은 직접적인 영향이 있었다. Mono의 음악에서 전해지는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심연의 깊이와 처연한 슬픔 같은 느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얘기할 수 있다. 이런 정서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다. 두 대의 기타로 만들어내는 트레몰로 연주와 함께 [You Are There]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는 현악 세션은 [You Are There]를 한 편의 장엄한 교향시처럼 들리게도 한다. 10분이 넘는 4곡과 3분짜리 소품 2곡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하나의 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나의 곡으로나, 한 장의 앨범으로나 기승전결이 확실한 하나의 슬픈 드라마다. 이 구조 앞에서, 이 멜로디 앞에서, 이 사운드 앞에서 그저 설득 당할 수밖에 없다. (김학선)
#9. Trans Am [Futureworld] (1999)
지극히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는 이름의 포스트락 앨범, 이란 걸 생각하면 의외스러울 정도로 Trans Am은 동시대의 다른 포스트락 밴드들보다 훨씬 ‘레트로’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심지어 앨범 이너슬리브도. 이거 테트리스 오마쥬 아닌가?). 의도되었을 진부하면서도 실없는 가사에 보코더를 위시한 때로는 촌티까지 흘러나오는 연주들은 일견 포스트락과는 맞지 않아 보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차용되는 다양한 ‘흘러간’ 스타일들을 밴드는 재기발랄하면서도 독특한 아이러니를 통해 하나로 묶어내고 효과적으로 ‘모방’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다(그럼에도 카시오 신서사이저 덕분인지 Kraftwerk의 인상은 어쩔 수 없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일을 ‘온고지신’을 통해서 얻은 경우라 하겠는데, 이런 시도가 단순한 패스티시에 그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이 보여준 가장 큰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다. 밴드는 이후의 앨범들에서도 레퍼런스를 달리할 뿐 비슷한 전략을 유지하지만, 이 앨범이 보여준 정도의 친숙한 아이러니에는 이르지 못했다. (빅쟈니확)
#8. Cul de Sac [ECIM] (1991)
Cul de Sac은 89년, 기타리스트 Glenn Jones가 키보디스트 Robin Amos와 함께 보스턴에서 결성한 락 밴드이다. 밴드 이름 ‘Cul de Sac’은 ‘막다른 골목’ 또는 ‘난감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말 그대로 여성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보낼 수 있는 그네들의 성감대를 뜻하는 동시에 삶 자체가 영화인 Roman Polanski 감독의 세 번째 장편 ‘궁지’ (1966)의 원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ECIM’은 그런 밴드 이름에 녹아있는 수상한 속뜻에 꽤 어울리는 음악이 담긴 밴드 Cul de Sac의 데뷔 앨범이다.
14살 때 Jimi Hendrix의 [Axis: Bold as Love]를 듣고 처음 어쿠스틱 기타를 장만한 글렌 존스의 취향, 그러니까 평화로운 정서를 짓뭉개는 혼란의 정서(사이키델릭)가 ‘Nico’s Dream’을 중심으로 앨범 전체에 번질 때 록의 틀 안에서 일렉트로닉과 노이즈를 불러내는 종교 체험은 ‘Homunculus’ 같은 곡이 책임진다. 찢기듯 살벌한 소음, 오픈 튜닝과 손가락 연주(Fingerstyle, 그는 얼마 전 발매한 여섯 번째 솔로 앨범 ‘Fleeting’에서 자신의 핑거 피킹 실력을 유감없이 들려주었다)로 엮어내는 냉기와 온기의 공존은 이들 음악이 그려낸 광기 어린 풍경을 짙게 물들인다. ‘The Moon Scolds the Morning Star’와 ‘Electar’가 가진 상업성(?)조차 그 아득한 밴드의 음악 철학을 좀먹을 순 없다. 1991년, 세상은 아직 포스트락을 보듬을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The Velvet Underground와 크라우트락, 재즈와 일렉트로닉을 단숨에 들이킨 이 이상한 경향은 Tortoise와 Cul de Sac, 그리고 Labradford를 잉태하며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른바 ‘1세대 포스트락’의 선두에 Cul de Sac, 그리고 ‘ECIM’이 있었던 것이다. (김성대)
#7. Talk Talk [Laughing Stock] (1991)
[The Colour Of Spring] (1986)에서 시작된 아트락의 여정이 [Spirit Of Eden] (1988)을 거쳐 본작으로 귀결되리라고는 밴드의 중심인 Mark Hollis 조차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80년대 초중반 특유의 고품질 세션과 레코딩(Steve Winwood가 참여했음을 기억하자!)에 기댔던 [The Colour Of Spring]의 흔적은 [Laughing Stock]에 이르러 딱 두 가지, Lee Harris 의 드럼 플레이와 James Marsh 의 커버 아트만 남게 되었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켰던 것은 Hollis의 내밀한 곡과 보컬이었는데, [Laughing Stock]의 새로운 지평은 바로 그것이 깊이 숙성된 결과였다. 그 지평의 면면으로 ‘Myrrhman’의 그윽한 공간감, ‘Ascension Day’ 후반의 거친 내달음과 갑작스런 단절, ‘After The Flood’의 기타 피드백, ‘Taphead’의 깨알 같은 노이즈 등을 지목할 수 있다면 본작은 응당 포스트락의 기원일 수밖에 없다. 21세기 포스트락 앨범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모든 파고가 이미 [Laughing Stock] 안에 다 들어있다. (윤호준)
#6. Dirty Three [Ocean Songs] (1998)
맨 앞에 Warren Ellis의 바이올린을 놓아야 한다. Warren Ellis의 바이올린 연주가 있음으로써 호주 멜버른에서 결성한 이 3인조 밴드는 여타 포스트락 밴드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할 수 있었고, 온전한 Dirty Three만의 세계를 완성해낼 수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유럽을 떠돈 경험이 있는 Warren Ellis는 그때의 경험과 정서를 Dirty Three에 녹여냈다. Dirty Three의 음악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집시풍의) 낭만과 슬픔, 그리고 열정 같은 수식어들은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Horse Stories] (1996)가 그런 Dirty Three의 음악적 특징과 익스페리멘틀 혹은 포스트락의 형식을 결합해 Dirty Three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앨범이라면 [Ocean Songs] (1998)는 이를 한층 더 결이 곱게 다듬은 앨범이다. 아름다움 혹은 서정성이라는 측면에서 [Ocean Songs]는 Dirty Three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제일가는 작품이다. 다른 포스트락 밴드들이 사운드를 쌓아간다면 Dirty Three는 무드를 이어나간다. Nick Cave, Sonic Youth, Pavement 같은 음악가들이 Dirty Three가 만들어내는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세계에 반해왔다. 나 같은 장삼이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학선)
#5. Bark Psychosis [Hex] (1994)
기타, 신시사이저, 샘플, 현악과 관악의 영롱한 소리들이 조각으로 분절돼 모네의 입자 같이 공간을 떠다닌다. 부서진 가옥에 편재하는 유령들처럼. 앞선 악절들이 형성한 조성(調性)에 대한 기대를 깨부수는 재즈적 접근도 돋보인다. 베이스기타의 동형 반복 엇박자 리프는 차창을 스치는 전신주나 아파트의 도형처럼 기능한다. 장르와 서사, 리듬이 짓이겨진 이 비현실적인 음의 공간에 가까스로 속도감을 형성하므로. 락, 재즈, 일렉트로니카에서 접근법을 대여하되 창의적인 배열 규칙과 공간감은 서로 복합돼 내재율을 품은 긴 산문을 만든다. 시간의 깊이, 3차원을 꿈처럼 쉽게 투과해버린다. ‘포스트락’이란 장르 이름은 평론가 Simon Reynolds가 이 앨범 리뷰에 씀으로써 평단에 퍼져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들으면 잠이 오는 걸작이다. (임희윤)
#4. Mogwai [Young Team] (1997)
97년 당시 앨범커버를 보고 ‘일본 밴드인가?’하며 의아했다. 커버에 사용된 후지은행 사진은 가증스럽게도 앨범의 분위기를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Teenage Fanclub이 대장노릇을 하던 ‘징글쟁글 기타 팝’의 고장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이라니!
아직 포스트락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때였다. Mogwai를 하드코어의 변종쯤이라 생각하고 들었다. 당시 이들은 젊은 팀(Young Team)이었지만 이미 대가의 풍모와 위엄이 느껴졌다. 결국 이후 장르의 대표스타가 됐고 내한 공연도 두 번이나 했다.
수줍고 아름답게 시작해서 잔잔하게 점증하다 결국 악몽의 폭발음을 내고 마는 앨범의 사운드는 가공할만하다. ‘Mogwai Fear Satan’이라는 처절한 명곡이 수록돼 있지만, 오히려 사탄이 Mogwai를 더 두려워할 것 같은 음반이다. (정원석)
#3. Tortoise [Millions Now Living Will Never Die] (1996)
포스트락이 ‘건방지게도’ 락 음악의 관습을 거부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했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어떤 형태로든 기존 락 음악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별짓을 다 해봐도 결국 어쩔 수 없이 그 애비 자식이라는 사실만 명확해지는 가족드라마와 비슷하다. 이런 점에서 Tortoise는 매우 이례적 존재다. 이들은 독일의 크라우트락, 미니멀리즘, 일렉트로니카, 재즈, 덥 등 오히려 락 음악외의 음악적 영향이 큰 밴드다. 음악적으로 유연한 만큼 멤버편성도 느슨하다. 견고한 멤버십의 밴드라기보다는 시카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연합체 같다.
Tortoise의 두 번째 앨범은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인디음악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청사진과 같다. 다종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콜라주도 했다가 용광로에 녹여보기도 하고 샐러드처럼 버무려보기도 한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단단히 조여진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영향으로 더욱 많은 밴드들이 락을 저 멀리 밀쳐놓고 이것저것 마구 섞어가며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게 된다. (정원석)
#2. Slint [Spiderland] (1991)
가장 신경질적이고 괴팍한 포스트락 음반. 켄터키 루이빌 출신의 이 무명 밴드가 씬의 개막을 알릴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더구나 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개화시킨 포스트락이라는 들꽃이 몇 년 후 크게 자라나 군락을 이루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1989년 Steve Albini의 프로듀싱으로 1집 [Tweez]를 세상에 쏘아 올렸던 Slint의 운명이 [Spiderland]를 기점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기까진 꽤 시간이 필요했다(안타깝게 1년 후 밴드는 해산해 버렸다).
흔히 이 음반은 아버지를 찾지 못한 음반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하드코어와 매스락, 재즈와 프로그레시브를 품으면서도 그 어느 길로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곡들은 기승전결의 체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보행하고, 보컬과 기타는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며, 고장난 버저처럼 앙칼지게 울려 퍼지는 드론 사운드는 호기로움의 다른 이름이다. ‘Breadcrumb Trail’에서 정체성을 신고한 밴드는 ‘Nosferatu Man’에선 유쾌한 위악을 펼쳐 보이더니, ‘Don, Aman’에 이르러선 뜬금없는 설교를 퍼붓는다. ‘장르’를 물어뜯는 연주, ‘음반’을 도륙하는 곡들, 결국 ‘기원’을 살해하고야 만다. 단언컨대, 이 변태 음반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1990년대 인디락 밴드는 없었다. (이경준)
#1. Godspeed You! Black Emperor [Lift Your Skinny Fists Like Antennas to Heaven] (2000)
위대한 파국이다. 숭고한 패배의 사운드다. 포스트락이 “락이라는 거대한 미궁 안에서 그 미궁을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이었다면, 이것은 실패의 기록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펑크와 하드코어가 종말을 고한 직후, 기적처럼 출몰한 펑크의 변이다. 빗발치는 노이즈, 예측할 수 없는 드론, 검은 휘장처럼 배경을 이루는 오케스트레이션, 급류처럼 빠져나가는 사운드의 흐름. ‘Storm’-‘Static’-‘Sleep’-‘Antennas to Heaven’으로 연결되는 네 개의 기다란 구간은 필연적인 연관성으로 얽히기보다는 전혀 상관없는 파편처럼 거리를 둔다. 일관성과 완결성이라는 “앨범”에 대한 통상적인 평가기준은 망가진다. 고로, [Lift…]는 태생적인 펑크 음반이다.
동시에, 이것은 “불가피하게 관성화될 수밖에 없는 포스트락의 운명”을 알려준 음반이며, “그것이 더 이상 참신한 동력을 제공해줄 수 없다면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묻는 자기반성적 음반이기도 하다. 이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몬트리올 포스트락 꼬뮨”은 후속작 [Yanqui U.X.O.], [‘Allelujah! Don’t Bend! Ascend!], [Asunder, Sweet and Other Distress]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포스트락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단언컨대 이런 밴드는 없었다. 그리고 [Lift…] 같은 음반도 없었다. 본 음반은 어떤 출발점이다. 정점이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끝이다. 이런 음반 뒤에 어떤 포스트락 음반이 가능할 수 있는가.
포스트-아포칼립스, 폐허, 구원. 음반은 노골적인 어떤 메시지도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런 이미지들이 스치지 않는다는 건 거짓이다. 이 황량한 시대에 포스트락은 어떤 위안이 될 수 있는가.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밴드는 제목으로 답변을 대신한다. 하늘을 향해 가녀린 네 주먹을 안테나마냥 들어 올려라. (이경준)
뭐든지 돈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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